악마의 상징에서 예수의 화신으로? 두 얼굴의 신수, 그리핀의 충격적인 반전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매와 사자의 위엄 있는 풍채를 동시에 지닌 신비로운 존재, 그리핀. 한때는 인간의 영혼을 탐하는 악마의 앞잡이로, 또 한때는 탐욕과 교만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그리핀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이라는 극적인 반전을 맞이하게 되었을까요? 마치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그리핀의 상징 변화,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함께 파헤쳐 보겠습니다!
1. 그리핀, 고대의 위엄과 공포를 품다: 하늘과 땅의 지배자
그리핀(Griffin 또는 Gryphon)은 그 기원이 기원전 3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문명을 시작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 심지어 동양 문화권에서도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죠. 일반적으로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앞발에 사자의 몸통과 뒷발을 가진 모습으로 묘사되는데, 이는 하늘의 제왕인 독수리와 지상의 제왕인 사자의 결합을 의미하며, 강력한 힘, 왕권, 용맹, 지혜, 그리고 신성함을 상징했습니다.
고대 문명에서 그리핀은 주로 다음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 보물의 수호자: 특히 황금을 지키는 존재로 유명했습니다. 중앙아시아 스키타이족의 전설에 따르면 그리핀은 황금이 풍부한 산에 살면서 금을 캐려는 인간들을 가차 없이 공격했다고 하죠. 이는 그리핀에게 탐욕스러운 이미지를 부여하기도 했습니다.
- 신성한 장소의 파수꾼: 신전이나 무덤과 같은 신성한 공간을 외부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 위엄 있는 모습만으로도 악한 기운을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 왕권의 상징: 강력한 힘과 용맹함은 왕이나 지배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징이었습니다. 많은 왕가의 문장이나 장식에서 그리핀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는 이유입니다.
- 신들의 탈것: 그리스 신화에서는 제우스나 아폴론과 같은 강력한 신들의 마차를 끄는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는 그리핀이 신들과 견줄 만큼 강력하고 신성한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이처럼 그리핀은 고대 사회에서 경외와 공포의 대상이자, 강력한 힘과 신성함을 동시에 지닌 복합적인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맹렬한 수호자의 모습과 탐욕스러운 괴물의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그리핀의 양면성은 이후 그의 운명을 더욱 극적으로 만들게 됩니다.
2. 기독교 세계관 속 그리핀: 악마적 존재로의 추락
로마 제국이 기독교를 국교로 받아들이고 중세 시대로 접어들면서, 고대 이교의 신들이나 상징물들은 종종 악마적인 존재로 재해석되거나 부정적인 의미를 덧씌우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그리핀 역시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 이교도의 상징, 악마의 현신: 그리핀의 강력하고 위협적인 외모, 그리고 황금에 대한 집착은 기독교적 가치관과 충돌했습니다. 하늘과 땅의 지배자를 합쳐놓은 듯한 모습은 신에 대한 도전, 즉 교만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습니다. 또한,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로 인간을 공격하고 해치는 존재로 묘사되면서, 인간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지옥으로 끌고 가는 악마의 하수인 또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자를 상징하는 존재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 탐욕과 교만의 아이콘: 그리핀이 황금을 지킨다는 전승은 기독교에서 7대 죄악 중 하나인 탐욕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세속적인 부에 대한 집착은 영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기독교 교리와 정면으로 배치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 그리핀은 성당의 괴물 석상이나 종교화 속에서 흉측하고 사악한 모습으로 그려지며,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심어주는 존재로 전락하고 맙니다. 과거의 위엄과 신성함은 온데간데없이, 악마적이고 부정적인 이미지만이 강조되었던 것이죠.
3. 단테의 ‘신곡’, 그리핀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다: 예수 그리스도의 알레고리
암흑 속에 갇혀 있던 그리핀에게 한 줄기 빛이 비추어진 것은 바로 14세기 이탈리아의 위대한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 의 역작 ‘신곡(La Divina Commedia)’ 을 통해서였습니다. 단테는 ‘신곡’의 두 번째 편인 ‘연옥편(Purgatorio)’에서 그리핀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숭고하고 신성한 존재로 묘사하며 그의 이미지를 180도 반전시킵니다.
‘신곡’ 연옥편 제29곡에서 단테는 지상낙원에서 장엄한 행렬과 함께 등장하는 그리핀을 목격합니다. 이때 등장하는 그리핀은 매우 특별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핀의 모습 | 상징적 의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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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부분 (금빛) |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神性) |
사자 부분 (흰색과 붉은색) |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 (흰색: 살, 붉은색: 피) |
단테는 그리핀의 독수리 부분을 찬란한 금빛으로, 사자 부분을 흰색과 붉은색이 섞인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신적인 본성과 인간적인 본성을 상징하는 절묘한 알레고리였습니다. 즉, 그리핀은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지닌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존재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그리핀은 교회를 상징하는 전차(수레)를 이끌고 등장합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교회를 이끌고 인도하며, 구원의 길로 나아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리핀의 두 가지 본성(독수리와 사자)이 하나의 존재 안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은, 신성과 인성을 모두 지닌 예수 그리스도의 양성(兩性)을 완벽하게 구현한 상징으로 해석됩니다.
단테가 이처럼 그리핀을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격상시킨 데에는 당시 시대적 배경과 그의 종교적 신념이 깊이 관여되어 있습니다. 당시 부패하고 세속화된 교황권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단테는, 그리핀을 통해 진정한 기독교적 가치의 회복과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신성과 인성을 겸비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통해, 종교적 권력과 세속적 권력을 동시에 지닌 교황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길을 암시한 것이죠.
4. 반전의 의미: 상징은 살아 움직인다
악마의 앞잡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화신으로, 그리핀의 극적인 상징 변화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 상징의 유동성: 하나의 상징이 고정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적 배경, 사회적 통념, 그리고 특정 개인의 창의적인 해석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 해석의 힘: 동일한 대상이라도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 문화적 영향력: 단테라는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이 당대는 물론 후대에까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며, 특정 상징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사례입니다.
단테 이후, 서양 문화와 예술에서 그리핀은 점차 긍정적이고 고귀한 이미지를 회복하게 됩니다. 물론 현대 판타지 소설이나 게임에서는 여전히 강력한 괴수나 몬스터로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신성함과 위엄, 그리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숭고한 이미지가 함께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어쩌면 그리핀의 이야기는 우리 삶의 모습과도 닮아있는지도 모릅니다. 한때는 오해받고 부정적으로 평가받던 존재가 새로운 해석과 만남을 통해 전혀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니게 되는 것처럼 말이죠. 하늘과 땅을 아우르는 신수 그리핀, 그의 드라마틱한 반전 스토리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끊임없는 영감과 흥미를 선사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리핀의 어떤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시나요?